삭발을 했던 날, 나는 존엄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물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 학교 안에는 무언가를 바꾸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는 분노도 있었고, 답답함도 있었고, 변화에 대한 요구도 있었습니다. 어떤 친구들은 운동장으로 나갔고, 어떤 친구들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고 교실에 남았습니다.

그 선택이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지 몰라서 가만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도 바뀌어야 할 것들에 대한 생각은 있었습니다. 부당한 것을 그대로 두어도 된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때 이런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삶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 자신도 개혁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바꾸자고 외치는 사람의 일상 또한 함께 바뀌어야 한다.

그 생각은 누구에게도 쉽게 동조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할 때, 나는 과연 내 삶을 먼저 돌아보고 있는가.

외부의 거친 분노와 침묵을 선택했던 순간

그때 한 친구가 저를 비겁하다고 말하며 의자를 집어던졌습니다.

시위에 함께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지, 분위기 속에서 생긴 감정의 표출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의 감정이 저를 향해 거칠게 던져졌다는 사실입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멈추었습니다.

억울했습니다.

왜 내 선택은 설명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지, 왜 다른 방식의 고민은 비겁함처럼 취급되어야 하는지, 왜 변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향한 거친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마음 안에서 많은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맞서 싸우지 않았고, 소리치지 않았고,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가 잘 참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두려웠을 수도 있고, 말문이 막혔을 수도 있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침묵 안에는 한 가지 분명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반대하는 방식과 닮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부당함에 분노할 수 있습니다. 억울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허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변화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향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순간, 그 변화는 이미 스스로의 언어를 잃을 수 있습니다.

삭발, 반항이 아닌 스스로를 향한 성찰과 다짐

그날 저녁, 저는 머리를 밀었습니다.

삭발은 누군가를 향한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 안의 다짐이었습니다.

나는 개혁을 말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겠다.
누군가를 비판하기 전에 내 언어와 태도를 먼저 살피겠다.
억울함을 겪더라도 폭력의 방식으로 되돌려주지 않겠다.
다수가 선택한 방식과 다르더라도, 내가 붙든 기준을 쉽게 버리지 않겠다.

삭발한 머리로 학교에 갔을 때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이상하게 보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으로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일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삶의 첫 번째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사람은 많은 순간 외부의 압력 속에서 선택합니다. 분위기에 휩쓸리기도 하고, 다수의 목소리에 자신을 맞추기도 하고, 반대로 두려움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선택하는 말과 행동이 나의 존엄을 지키는 일인가.
내가 지금 분노하는 방식이 타인의 존엄을 해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옳다고 믿는 일 안에, 나 자신을 돌아보는 책임도 함께 있는가.

상처 속에서 발견한 존엄과 존귀함의 시작

그때는 존엄이라는 말을 지금처럼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날 제가 붙들고 싶었던 것은 존엄이었습니다. 누군가의 행동에 상처받았다고 해서 나까지 함부로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음. 억울하다고 해서 똑같이 거칠어지지 않으려는 마음. 나의 선택이 조롱받더라도 그 선택 안에 담긴 질문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

그것이 제게는 존엄의 시작이었습니다.

존귀함도 그때 조금씩 배웠습니다. 존귀함은 내가 특별해서 남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내가 귀한 만큼 다른 사람도 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나의 생각이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함부로 모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그 경험은 오래 제 안에 남았습니다.

이후에도 저는 여러 순간을 만났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직장 생활 속에서도, 관계 안에서도 억울하고 불편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완벽하게 평온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에서는 수없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준은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폭력의 언어를 닮지 말자.

나를 아프게 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말자.
나를 무시한 사람 때문에 내가 나를 무너뜨리지 말자.
상황이 나를 흔들어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잊지 말자.

그 기준은 제 삶을 느리지만 분명하게 바꾸었습니다.

화를 참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억울함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더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났다는 것, 억울하다는 것, 인정받지 못해 아프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은 다릅니다.

감정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행동은 책임져야 합니다. 이 기준은 나에게도 적용되고, 타인에게도 적용됩니다.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타인의 존엄을 훼손할 수 없듯, 타인의 분노도 내 존엄을 함부로 다룰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과연 나의 존엄과 존귀함을 무너뜨릴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이 질문은 그날의 저를 다시 불러옵니다. 의자가 던져진 순간에도 말없이 서 있던 학생, 억울함을 품고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밀었던 학생, 누군가를 이기기보다 자기 삶을 먼저 바로 세우고 싶었던 학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학생이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자기 방식으로 삶을 묻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세상만을 향해 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언어와 태도 안에서도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의 제 글과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제 그 경험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때의 삭발은 반항이 아니라 다짐이었습니다.
분노가 아니라 성찰이었습니다.
침묵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세우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말로 지킵니다. 누군가는 거리를 두며 지킵니다. 누군가는 기록하며 지킵니다. 누군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다시 묻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길을 찾는 일입니다.

그날 저는 배웠습니다.

결론: 내 언어와 태도에서 시작되는 진짜 자기회복

개혁은 바깥을 향한 요구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개혁은 내 언어와 태도 안에서도 시작되어야 합니다.
존엄은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에도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데서 드러납니다.
존귀함은 내가 상처받은 순간에도 나를 함부로 무너뜨리지 않는 데서 확인됩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 하루는 오래 지났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질문은 아직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제 삶의 중요한 기준이 되어 줍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언어를 선택할 것인가.
나는 상처받은 순간에도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나는 나의 존엄과 존귀함을 지키면서도 타인의 존엄을 함께 인정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붙들고 사는 것이 제가 배운 자기회복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오늘의 글로 남기는 이유는, 누군가도 자신의 삶에서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순간, 오해받는 순간, 다수의 분위기 속에서 자기 생각을 잃을 것 같은 순간, 그때 이 문장이 작은 기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함부로 무너뜨리지 말자. 그리고 내가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말자.”

그것이 제가 삭발을 했던 날 배운 존엄의 언어였습니다.

이 글의 핵심 정리

  • 고등학교 시절 삭발은 반항이 아니라 자기 언어와 태도를 돌아보려는 성찰의 다짐이었습니다.
  • 변화는 바깥을 향한 요구만이 아니라, 내 삶과 언어를 먼저 돌아보는 책임에서도 시작됩니다.
  •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타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존엄을 지키는 중요한 자기회복입니다.
  • 감정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감정을 이유로 폭력의 언어를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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