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복무 시절 맞았던 날, 나는 폭력의 언어를 넘기지 않기로 했습니다

군 복무 시절의 일입니다.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 더 거칠고 권위적인 분위기가 당연한 것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위계는 분명했고, 말은 짧았고, 감정은 쉽게 명령이 되었습니다. 어떤 행동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여졌고, 어떤 폭력은 분위기라는 말로 지나갔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맞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먼저 멈추었습니다. 왜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지, 왜 사람을 가르친다는 이름으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지, 왜 누군가의 분노가 다른 사람의 몸으로 떨어져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제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맞았다는 사실만이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보다 위에 서게 되었을 때, 나도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를 대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내가 겪은 폭력이 나의 언어가 되고, 내가 받은 모욕이 나의 태도가 되고, 내가 견딘 억울함이 또 다른 사람을 향해 되풀이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조용히 남은 다짐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방식을 닮지 않겠다.
나를 아프게 한 언어로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
내가 당한 일을 이유로 누군가에게 같은 상처를 주지 않겠다.

그 다짐이 처음부터 선명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처럼 존엄과 존귀함이라는 말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폭력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 안의 무언가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말입니다.

폭력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은 맞아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욕을 당해서 더 단단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그런 시간을 견디며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르게 느꼈습니다. 폭력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숨기게 만들고, 언젠가 그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싶게 만드는 위험한 기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서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을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복수가 아니라, 내가 겪은 일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 진짜 멈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억울함을 품고도 폭력의 방식으로 되돌려주지 않는 것. 상처받았지만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이 제가 붙들 수 있는 작은 존엄이었습니다.

군대라는 공간은 많은 것을 배우게 했습니다.

명령을 따르는 법도 배웠고, 불편한 상황을 견디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배운 것은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할 때 한 사람 안에서 무엇이 무너지는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너짐을 다시 누군가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의식적으로 멈춰야 하는가였습니다.

위계가 있는 곳에서 더 필요한 존엄의 가치

나중에 제게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위치가 생겼습니다.

그때마다 조심하려고 했습니다. 말이 세지지 않도록, 감정이 명령처럼 튀어나가지 않도록, 나의 불편함이 상대를 짓누르는 방식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려 했습니다. 완벽하게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기준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자.

내가 지금 화가 났다는 이유로 상대의 존엄을 훼손하지 말자. 내가 피곤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무시하지 말자. 내가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상대를 작게 만들지 말자. 내가 겪은 시간이 힘들었다는 이유로 그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통과의례처럼 강요하지 말자.

존엄은 특별한 순간에만 필요한 말이 아닙니다.

존엄은 위계가 있는 곳에서 더 필요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필요하고,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도 필요하고, 직장 안에서도 필요합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누군가보다 조금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을 때, 그때 사람의 존엄은 더 쉽게 시험받습니다.

존귀함을 자각한다는 것은 나만 귀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함부로 맞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듯, 다른 사람도 함부로 맞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욕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듯, 다른 사람도 모욕당하지 않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이듯, 다른 사람의 억울함도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지금 이 상황이 과연 나의 존엄과 존귀함을 무너뜨릴 만큼 가치 있는 일인가?”

이 질문은 군 복무 시절의 기억과도 이어져 있습니다. 맞았던 순간의 억울함, 그럼에도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지 않으려 했던 마음,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이 질문 안에 남아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이유로 쉽게 변명하고 싶어집니다.

“나도 그렇게 당했으니까.”
“그때는 다 그랬으니까.”
“이 정도는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말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겪었다는 이유로 누군가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견뎠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도 견뎌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겪었기 때문에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아프게 하는지,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는지, 얼마나 쉽게 되풀이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결론: 상처를 넘겨주지 않는 진짜 자기회복의 완성

폭력은 나에게서 멈춰야 합니다.

그것이 제가 군 복무 시절의 경험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자기회복의 언어였습니다. 자기회복은 나만 괜찮아지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가 무너졌던 방식으로 누군가를 무너뜨리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시간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맞았던 일을 무용담처럼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견뎌냈으니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경험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상처는 폭력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억울함은 모욕의 허락이 될 수 없습니다.
고통은 누군가를 함부로 대할 권리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이 질문은 지금도 제 삶의 중요한 기준입니다. 가정에서도, 관계에서도,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는 이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겪은 아픔이 누군가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내가 배운 언어가 폭력이 아니라 회복의 방향으로 이어지도록 조심하려 합니다.

군 복무 시절 맞았던 날,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사람은 폭력을 당했다고 해서 폭력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욕을 겪었다고 해서 모욕의 언어를 물려받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아픔을 겪은 사람은 그 아픔을 되풀이할 수도 있지만, 그 아픔을 멈추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선택을 배우는 중입니다.

이 글의 핵심 정리

  • 폭력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숨기고 되풀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내가 겪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 일은 중요한 자기회복의 실천입니다.
  • 위계가 있는 곳일수록 사람의 존엄과 존귀함을 더 의식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 상처는 폭력의 이유가 될 수 없고, 억울함은 모욕의 허락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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