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이 공부를 재촉하지 않은 양육|거실 성적표와 가족여행이 만든 자발성

거실 성적표 앞에서도 함께 웃었던 가족의 자녀교육


거실 게시판에는 아이들의 성적표가 계속해서 붙었다.

새 성적표가 나오면 이전 성적표를 떼어 내지 않고 그 위에 다시 붙였다. 잘했다거나 못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점수와 등수로 아이를 평가하지도 않았다.

성적표 앞에서 우리는 학교생활과 함께 떠났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차를 타고 전국을 다녔던 일,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았던 순간,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함께 웃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이들의 초·중·고 성적은 중하위권이었지만 성적표가 붙은 거실은 긴장하거나 침묵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어떤 결과 앞에서도 서로를 평가하기보다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웃을 수 있는 가족의 공간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요구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사교육도 전혀 보내지 않았고, 학교와 진로를 부모가 대신 정해 주지도 않았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부모가 시켜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발견하며 필요성을 느꼈을 때 스스로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지금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시간과 책임을 관리하며 기말고사에서 A+와 2등이라는 결과를 이루었다.

또 다른 아이는 고입 원서부터 대학교 진학, 군 복무, 취업 지원까지 삶의 중요한 과정을 부모의 정답이나 간섭 없이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과 노력으로 대기업 최종 합격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글은 사교육을 하지 않고 공부를 재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바라보는 결실은 좋은 성적이나 좋은 직장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발견하며,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거실 게시판에 성적표를 계속 붙여 둔 이유

아이들이 성적표를 받아 오면 거실 게시판에 붙였다.

새로운 성적표가 나오면 이전 성적표 위에 다시 붙였다.

좋은 성적표만 골라 전시하지 않았고, 낮은 점수를 받은 성적표를 감추지도 않았다.

성적표를 자랑하기 위해 붙인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한 시기를 가족이 함께 기억하기 위해 붙였다.

성적표는 아이의 가치를 판정하는 문서가 아니라 학교생활의 한 시간을 기록한 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적표 앞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왜 이것밖에 못했니?”

“친구는 몇 점을 받았니?”

“다음에는 반드시 더 잘해야 한다.”

성적이 높다고 아이의 가치가 커지고, 성적이 낮다고 아이가 부족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적표는 한 시기의 학습 상태를 보여 줄 수는 있어도 아이의 인격과 존엄, 가능성과 미래까지 결정할 수는 없다.

아이들의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성적을 아이들의 미래라고 해석하지 않았다.

지금 잘하지 못하는 것과 앞으로도 해낼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과 능력이 없는 것도 같은 뜻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이유를 발견하고 스스로 선택한 목표가 생겼을 때 이전과 다른 힘을 보여 주기도 한다.

나는 성적을 빠르게 올리는 것보다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자신의 가능성과 존엄을 낮게 평가하지 않도록 돕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점수를 받았을 때만 부모의 얼굴이 밝아지고 낮은 점수를 받았을 때 실망과 비난을 견뎌야 한다면, 아이는 공부보다 부모의 눈치를 먼저 배우게 된다.

나는 아이들이 성적표를 보여 주기 전에 아빠의 표정부터 살피지 않기를 바랐다.

성적이 어떠하든 자신의 하루를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랐다.

성적표 앞에서 가족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다

거실 게시판의 성적표 앞에서 우리가 나눈 것은 점수에 대한 평가보다 함께 살아온 이야기였다.

기차를 타고 전국을 여행했던 일, 낯선 역에 내렸던 순간,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돌아갔던 일, 오래 걸어 다리가 아팠던 날을 이야기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던 여행도 시간이 지나면 웃을 수 있는 가족의 기억이 되었다.

성적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높은 점수와 낮은 점수 모두 아이가 지나온 한 시기의 기록이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아이의 미래를 단정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친구 이야기, 수업 중 재미있었던 일, 함께 여행하며 겪었던 장면들을 나누었다.

성적표 앞에서도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성적을 가볍게 여겼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가족의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지켜 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실패를 숨기지 않고,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집으로 돌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돌이켜 보면 아이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성적표 앞에서 비교하지 않았던 시간,

여행의 불편함까지 웃음으로 바꾸었던 기억,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를 지지했던 관계가 오랜 시간 쌓여 만들어 낸 결실이었다.

초등학교 부모동행학습으로 전국을 여행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부모동행학습을 신청해 함께 전국을 여행했다.

서울과 부산, 대구와 여수, 정동진과 목포를 비롯해 여러 지역을 기차로 다녔다. 제주에도 갔다.

좌석이 없으면 입석으로 긴 시간을 이동했고, 야간열차에서 밤을 건너거나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목포에 도착했던 어느 새벽에는 세 사람이 잠시 몸을 누일 수 있는 놀이터 벤치를 발견했다.

피곤했던 우리는 좁은 벤치에 몸을 접고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하늘이 아니라 버스였다.

우리가 누워 있던 벤치는 버스정류장 바로 옆이었고, 버스 안의 사람들이 창문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함께 웃었다.

여행은 언제나 편안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날도 있었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도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길을 찾고, 불편함을 견디며, 예상과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방향을 정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은 유명한 관광지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낯선 곳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

계획이 어긋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불편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탓하지 않고 함께 하루를 건널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교실과 교과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공부만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을 직접 만나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고, 선택의 결과를 경험하며, 어려운 순간에도 함께 웃을 수 있는 힘도 중요한 배움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동행학습으로 떠났던 전국 여행은 공부를 멈춘 시간이 아니었다.

세상을 교과서로 삼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던 시간이었다.

공부를 요구하거나 재촉하지 않은 이유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요구하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공부해라.”

“성적을 올려라.”

“지금 하지 않으면 뒤처진다.”

이런 말로 아이를 책상에 앉히려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부모의 요구와 감시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자발적으로 시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부모가 공부하라는 말을 반복하면 아이는 배움의 필요성보다 부모의 표정과 기대를 먼저 살필 수 있다.

공부가 자신의 삶을 위한 일이 아니라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거나 꾸중을 피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는 순간에도 아빠의 눈치를 보지 않기를 바랐다.

쉬고 싶을 때는 죄책감 없이 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부모의 허락이나 재촉을 기다리지 않고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랐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부모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에 물을 수 있기를 바랐다.

공부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재촉하지 않았지만 무관심하게 외면하지 않았다.

간섭하지 않았지만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는 곁을 지켰다.

내가 생각하는 자기주도학습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하라고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며, 필요성을 느꼈을 때 스스로 선택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관계와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사교육을 보내지 않은 이유

아이들을 사교육에 전혀 보내지 않았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학원이나 과외가 모든 아이에게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도움을 원한다면 상황에 맞는 배움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부모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아이의 하루를 먼저 채우고 싶지 않았다.

다른 아이가 앞서간다는 이유로,

성적이 기대보다 낮다는 이유로,

부모가 안심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이의 시간과 선택권을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부모가 불안할 때마다 학원과 과제를 늘리면 부모는 잠시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사교육을 보내지 않은 것은 공부를 포기한 선택이 아니었다.

아이의 속도와 시간을 존중하고, 스스로 배울 이유를 발견할 가능성을 부모가 먼저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이었다.

단 한 번도 폭언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자녀를 양육하는 동안 단 한 번도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큰 목소리와 두려움으로 아이를 굴복시키거나 복종하게 하지 않으려 했다.

부모가 화를 내고 위협하면 아이가 말을 들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판단으로 행동을 바꾼 것이 아니라 부모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순응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아버지의 기분부터 살피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성적표를 보여 주기 전에 내 표정을 걱정하지 않고,

진학과 취업을 결정할 때 내가 원하는 답부터 찾지 않으며,

실수했을 때 혼날까 두려워 숨지 않기를 바랐다.

폭언과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화를 참는 문제가 아니었다.

힘이 더 강한 사람이 힘이 약한 사람의 존엄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겠다는 삶의 원칙이었다.

아이에게 감정을 조절하라고 가르치려면 부모가 먼저 자신의 분노와 불안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말하려면 부모가 먼저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

소리치지 않아도 단호할 수 있다.

비난하지 않아도 잘못을 가르칠 수 있다.

겁주지 않아도 책임을 배우게 할 수 있다.

부모의 권위는 아이가 두려워하는 큰 목소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원칙을 삶으로 지켜 내는 일관성에서 생긴다고 생각했다.

절대적 지지는 결과가 나오기 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절대적 지지는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해도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한 행동에는 책임을 묻되, 잘못이나 실패를 이유로 사랑과 관계까지 거두지 않는 것이다.

“그 행동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너는 잘못된 아이야”라고 존재 전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행동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사람의 존엄까지 훼손해서는 안 된다.

절대적 지지는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보내는 칭찬이 아니다.

좋은 학교나 직장에 들어갔을 때 건네는 박수도 아니다.

아직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관계를 거두지 않는 태도다.

아이들이 중하위권 성적을 받을 때에도 지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교에 진학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성을 인정한 것도 아니고, 대기업에 합격한 뒤에야 자녀를 믿기 시작한 것도 아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믿은 것이 아니라,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부터 믿고 싶었다.

자녀가 선택한 학교를 위해 이사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 고등학교 진학 원서를 작성할 때도 학교를 부모가 대신 정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다닐 학교를 직접 살피고 선택했다.

부모가 경험이 더 많다는 이유로 정답을 정해 주지 않았다.

부모가 선호하는 학교를 선택하도록 설득하거나 더 유리해 보이는 길로 결정을 바꾸라고 압박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선택한 학교는 처음에는 통학하는 데 약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선택으로 생긴 불편을 아이 혼자 감당하게 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지지인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학교를 다시 선택하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부모 말을 들었어야지.”

“네가 선택했으니 불편해도 네가 감당해.”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 걸어서 통학할 수 있도록 생활의 터전을 옮겼다.

부모의 편의보다 자녀의 선택을 앞에 두고 실제로 이사했다.

그 이사는 단순히 통학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결정만은 아니었다.

아이에게 이런 말을 삶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네가 선택한 길을 존중한다.
나는 네 선택을 말로만 허락하지 않겠다.
네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부모인 나도 내 삶을 움직이겠다.

아이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고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은 스스로 경험하게 하되, 부모가 함께 감당해야 할 몫까지 아이에게 넘기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지지는 말로 허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자녀의 선택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부모의 삶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알바 두 개와 대학 공부를 병행해 A+와 2등을 이루었다

한 아이는 초·중·고 시절 중하위권 성적을 받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에 진학했고, 현재 두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알바 두 개와 대학 공부를 함께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터로 가서 자신의 몫을 책임지고, 다시 수업과 과제, 시험 준비를 이어 가야 했다.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스스로 조절하며 일과 학업의 책임을 함께 감당했다.

그리고 이번 기말고사에서 A+와 2등이라는 결과를 이루었다.

부모가 공부하라고 재촉해서 책상에 앉은 것이 아니었다.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 억지로 노력한 것도 아니었다.

두 곳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일과 학업을 함께 책임졌다.

초·중·고 성적이 중하위권이었다는 사실과 대학교에서 알바 두 개를 병행하며 A+와 2등을 했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사람마다 자신의 힘을 발견하는 시기와 환경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일찍 목표를 발견하지만, 어떤 사람은 더 많은 경험과 책임을 지나며 자신이 왜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늦게 시작했다는 것은 뒤처졌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이유를 발견한 뒤 스스로 시작했다는 것은 그 배움이 부모의 통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 뿌리를 내렸다는 뜻일 수 있다.

나는 2등이라는 순위만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의 생활을 책임지고, 두 곳에서 일하며, 학업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펼쳐 낸 자발성과 삶의 태도를 더 귀하게 바라본다.

고입 원서부터 군 복무와 취업까지 스스로 결정했다

또 다른 아이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판단으로 선택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고입 원서를 작성하는 과정부터 부모가 학교를 정해 주지 않았다.

대학교 진학과 전공, 군 복무와 취업 준비 과정에서도 부모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취업 지원서를 작성할 때도 어느 회사에 지원해야 하는지, 어떤 직무를 선택해야 하는지 부모가 대신 결정하지 않았다.

부모의 체면을 위해 학교나 직장을 선택하게 하지 않았다.

부모가 원하는 답을 말해야 관계가 유지되는 환경도 만들지 않으려 했다.

아이는 자신의 판단으로 진학하고, 군 복무를 감당하고, 대학교 생활과 취업 준비를 이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대기업 최종 합격에 이르렀다.

그러나 대기업이라는 이름이 아이의 가치를 높여 준 것은 아니다.

합격하기 전에도 아이는 존엄했고, 합격한 뒤에도 존재의 가치가 더 커진 것은 아니다.

내가 더 귀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이가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선택해 왔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정답을 정해 주지 않았기에 자신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부모가 앞에서 끌고 가지 않았기에 자신의 발로 걸을 수 있었다.

부모와 다른 선택을 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의 생각을 배신하지 않을 수 있었다.

좋은 성적과 취업보다 더 큰 결실

사교육을 하지 않고 공부를 재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아이가 A+를 받고 다른 아이가 대기업에 합격했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노력과 선택, 교육 환경과 기회,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여러 사회적 조건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가정의 양육 방식을 모든 부모와 자녀에게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A+와 2등, 대기업 최종 합격은 특정 시점에 나타난 하나의 결과다.

성적은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직장은 바뀔 수 있고 진로도 달라질 수 있다.

내가 가장 귀하게 바라보는 결실은 따로 있다.

거실 게시판에 계속해서 붙여졌던 성적표 앞에서 서로를 평가하지 않았던 것,

함께 여행했던 이야기를 나누며 언제나 즐겁게 웃을 수 있었던 것,

실패하거나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집으로 돌아와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은 성적표 한 장이나 합격증 한 장으로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성적표 앞에서 비교하지 않았던 시간,

여행의 불편함까지 웃음으로 바꾸었던 가족의 기억,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자발성을 기다렸던 태도,

단 한 번도 폭언과 폭력으로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았던 관계,

자녀가 선택한 길을 지지하기 위해 부모의 삶도 함께 움직였던 시간이 오랫동안 쌓여 이루어진 결실이었다.

우리가 만든 가장 큰 결실은 좋은 성적이나 좋은 직장이 아니었다.

어떤 결과 앞에서도 서로를 평가하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며, 언제나 다시 웃을 수 있는 가정이었다.

기다리는 양육과 방임은 다르다

기다리는 양육은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다.

방임은 아이에게 필요한 관심과 보호자의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다.

기다림은 아이의 선택권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관계와 책임을 끝까지 지키는 적극적인 신뢰다.

도움을 요청할 때 곁에 있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보호자의 책임을 다하며, 실패했을 때 비난보다 다시 시작할 힘을 건네는 것이다.

공부를 요구하지 않는 것 역시 무관심과 다르다.

아이의 관심을 살피고, 다양한 경험을 열어 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할 시간을 보장하고, 도움을 요청할 때 필요한 방법을 함께 찾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를 믿는다는 것은 언제나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낙관하는 일이 아니다.

지금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의 존엄과 가능성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는 일이다.

양육의 목표는 부모의 눈치를 잘 보는 아이가 아니다

나는 자녀와 학생이 부모와 교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관계를 양육과 교육의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예의를 지키지 않거나 책임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른의 표정과 기분을 살피느라 자신의 생각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부모와 교사를 실망시킬까 두려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고,

어른이 원하는 답과 다르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으며,

실패를 숨기지 않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관계를 뜻한다.

부모와 교사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교육은 겉으로 순종적인 아이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없는 자리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힘까지 길러 주지는 못한다.

부모와 교사는 자녀와 학생의 삶을 지휘하는 감독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고 삶의 방향을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아빠가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삶의 태도

아이들에게 성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나부터 성실하게 살아가려 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라고 말하기 전에 가족의 존엄을 먼저 지키려 했다.

감정을 조절하라고 말하기 전에 내 분노를 아이에게 쏟아 내지 않으려 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라고 말하면서 부모인 나도 내 선택과 행동에 책임지려 했다.

자녀의 진학을 존중한다고 말했기에 아이가 선택한 학교에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이사했다.

아이의 가능성을 믿는다고 말했기에 중하위권 성적을 미래에 대한 판결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이의 시간과 자발성을 존중한다고 말했기에 공부를 요구하거나 재촉하지 않았고, 부모의 불안을 줄이려고 사교육으로 하루를 채우지 않았다.

아이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생각했기에 폭언과 폭력으로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성적표가 붙은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는 관계를 지키려 했다.

아이들이 내 말을 잘 듣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발견하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동반자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성적보다 오래 남는 삶과 가족의 힘

성적은 늦게 오를 수 있다.

진로는 달라질 수 있고 취업은 여러 번 다시 도전할 수 있다.

직장을 옮기거나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사람마다 자신의 힘을 발견하는 시기와 방식은 다르다.

그러나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힘,

선택한 결과를 책임지는 힘,

필요성을 발견했을 때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힘,

실패하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힘,

어려운 날에도 가족과 다시 웃을 수 있는 힘은 한 사람의 삶을 오래 지탱한다.

아이들과 함께 전국을 여행했던 시간,

거실 게시판에 성적표를 계속 붙였던 날,

성적표 앞에서 평가 대신 여행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던 순간,

공부를 요구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자발성을 기다렸던 시간,

사교육보다 아이의 시간과 선택을 존중했던 결정,

아이가 선택한 고등학교에 걸어서 통학할 수 있도록 생활의 터전을 옮겼던 선택,

한 아이가 알바 두 개와 대학교 공부를 함께 책임졌던 시간,

또 다른 아이가 고입 원서와 대학교 진학, 군 복무와 취업 지원서를 스스로 선택하도록 지켜봤던 날들을 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지키고 싶었던 기준은 하나였다.

아이들이 중요한 순간마다 부모의 표정과 기대부터 살피지 않게 하는 것.

내가 가장 감사하게 바라보는 것은 성적과 합격의 이름이 아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시켜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것,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말할 수 있었다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결과 앞에서도 가족과 다시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부모와 교사는 아이의 삶을 대신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동반자다.

교육의 출발점은 아이를 믿을 만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자녀와 학생이 처음부터 존엄하고 존귀한 존재였음을 부모와 교사가 끝까지 잊지 않는 데 있다.

나는 지금도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건네고 싶다.

나는 네가 성공했기 때문에 너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내 뜻대로 살아야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공부해야만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내 눈치를 보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고 선택해도 괜찮다.
결과가 기대와 달라도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다.
네가 선택한 삶을 네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는 끝까지 곁을 지키겠다.

사교육 없는 자녀교육에 관해 자주 묻는 질문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까?

공부를 재촉하지 않는 것만으로 자발성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아이의 관심을 존중하며, 선택할 기회와 결과를 경험할 시간을 주는 관계가 함께 필요하다.

공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 방임이 아닐까?

방임은 관심과 책임을 내려놓는 것이다. 공부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아이의 생활과 어려움을 살피고, 도움을 요청할 때 함께 방법을 찾으며, 위험한 상황에서는 보호자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성적표를 평가하지 않으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

성적표로 아이의 존재를 평가하지 않는 것과 학습 상태에 무관심한 것은 다르다. 어려움을 함께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되, 점수와 등수로 아이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주도학습이란 무엇일까?

자기주도학습은 아이에게 모든 것을 혼자 알아서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판단하고, 목표와 방법을 선택하며, 결과를 돌아보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부모와 교사가 관계와 환경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성적표를 거실 게시판에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성적표를 자랑하거나 감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좋은 결과와 좋지 않은 결과를 가리지 않고 가족이 함께 지나온 한 시기의 기록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성적표 앞에서도 관계가 달라지지 않고 함께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었다.

절대적 지지는 잘못된 행동도 허용한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자녀의 존재는 끝까지 지지하되 잘못된 행동에는 분명한 경계와 책임이 필요하다. 행동을 바로잡는 것과 사람의 존엄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부모와 교사에게 묻고 싶은 것

우리는 아이가 좋은 결과를 보여 주었을 때만 믿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아무런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그 아이의 존엄과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가.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그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가.

성적표 앞에서 아이의 점수보다 아이의 얼굴을 먼저 바라본 적이 있는가.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함께 이야기하고 다시 웃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있는가.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가장 빠른 길이 아닐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길을 선택해도 부모와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먼저 필요하다.

부모의 진정한 지지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 주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선택과 자발성을 존중하고, 그 선택이 현실에서 가능하도록 부모도 자신의 삶을 기꺼이 움직이며, 어떤 결과 앞에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다시 웃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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